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은퇴작 <바람이 분다> 실화 인물 호리코시 지로와 제로센 전투기 논란, 그리고 감독 자신을 투영한 깊이 있는 해석까지. 넷플릭스에서 꼭 다시 봐야 할 이유를 총정리했습니다.
📋 글의 순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번째 작별인사
"바람이 분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2013년,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한 문장과 함께 우리에게 첫 번째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제7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람이 분다>는 그의 공식적인 은퇴작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가 10년 만인 2023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그렇기에 <바람이 분다>는 이제 단순한 '마지막 작품'이 아닌, 한 시대의 끝에서 거장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며 던진 가장 솔직하고 묵직한 질문으로 기록됩니다.
1930년대 일본,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왜 그토록 많은 논쟁을 낳았을까요?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왜 하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을 통해 이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요?
실존 인물: 꿈을 좇은 공학자와 비극적 사랑의 소설가
<바람이 분다>는 두 명의 실존 인물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호리코시 지로와 호리 타츠오에게 경의를 담아"라는 문구가 그 증거죠.
- 호리코시 지로 (堀越二郎): 영화의 중심 서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미쓰비시의 '제로센'을 설계한 천재 공학자 호리코시 지로의 반생을 따라갑니다. 순수하게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그의 꿈과 열정이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룹니다.
- 호리 타츠오 (堀辰雄): 주인공 '지로'와 '나호코'의 애틋하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소설 『바람이 분다』와 『나오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결핵을 앓는 연인과의 이야기는, 자칫 차가운 기술자의 이야기로 흐를 뻔한 영화에 따뜻한 숨결과 서정성을 불어넣는 또 다른 축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두 인물의 삶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꿈과 사랑, 그리고 시대의 비극이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완성해 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 지로의 꿈과 사랑을 함께한 사람들
- 호리코시 지로: 시력 문제로 조종사의 꿈을 접고, 이탈리아 설계자 '카프로니'를 동경하며 최고의 항공기 설계자가 되기로 결심한 주인공입니다.
- 사토미 나호코: 관동대지진 당시 지로의 도움을 받은 것을 계기로 운명처럼 재회하는 여인. 지병인 결핵을 앓고 있어 그들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게 그려집니다.
- 카프로니: 지로의 꿈속에 나타나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항공기 설계자. 지로에게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꿈을 창조하는 사람'으로서의 영감과 용기를 주는 정신적 멘토입니다.
- 혼조 키로: 지로의 입사 동기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 때로는 지로의 천재성을 질투하면서도, 그의 가장 든든한 동료이자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TMI: 영화 속 그 호텔, 존 레논이 사랑한 '만페이 호텔'이었다?
영화에서 지로와 나오코가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사랑을 키워나가는 호텔은 단순히 가상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바로 1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루이자와의 클래식 호텔, '만페이 호텔(Mampei Hotel)'을 실제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1930년대 상류층의 휴양 문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실제 만페이 호텔의 특징을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게 재현했습니다.
- 빨간 카펫이 깔린 웅장한 로비
-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 일본과 서양이 절충된 독특한 건축 양식
놀라운 사실은, 이 호텔이 비틀스의 존 레논이 가장 사랑한 일본 호텔로도 유명하다는 점입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128호실에 자주 머물렀고, 호텔 카페 메뉴에 있는 '로열 밀크티'는 존 레논이 직접 비법을 전수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 낭만적인 공간이 실존하는 역사적인 장소라는 사실은 <바람이 분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MAMPEI HOTEL | The Classic Hotel in Karuizawa, Japan
Mampei Hotel, established in 1894, is a classic hotel in Karuizawa. Here, over a century of history blend together with the staff’s hospitality in beautiful harmony. We invite you to relax in a guestroom surrounded by the rich natural environment, enjoy
www.mampei.co.jp
논란의 핵심: 아름다운 꿈은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바람이 분다>가 개봉했을 때, 가장 큰 비판은 바로 '전쟁 미화' 논란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만든 제로센은 아름다운 비행기 이전에, 태평양 전쟁의 침략을 상징하는 파괴적인 살상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제로센의 우수성과 기체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그 비행기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창조물이 파괴의 도구가 되는 것을 보며 괴로워하는 지로의 내적 고뇌에 집중하죠.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쟁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가해자의 서사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개인의 순수한 동기는, 그 결과물이 낳은 비극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감독의 고백: 호리코시 지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분신이었을까?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왜 이 모든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이야기를 선택했을까요? 많은 평론가들은 주인공 지로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두 사람의 삶이 놀랍도록 닮아있기 때문이죠.
- 아름다운 것에 대한 평생의 집념: 오직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바친 호리코시 지로.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비효율적이라 불리는 2D 셀 애니메이션이라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미야자키 하야오.
- 창조자의 딜레마: 자신의 순수한 창작물(비행기/애니메이션)이 의도와는 다르게 전쟁 무기나 상업적 상품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창작자의 숙명. 지로의 고뇌는 곧 미야자키 자신의 고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정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나는 내가 원하는 지로를 만들었을 뿐이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습니다.
이는 지로가 감독 자신의 완전한 투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담고 싶은 이상과 고뇌를 집약시킨 하나의 독립된 캐릭터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람이 분다>는 감독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면서도, 한 인물의 전기를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 애니메이터가 '창작'과 '시대'라는 주제에 대해 던지는 솔직한 고백이자 회고록인 셈입니다. 지로가 그의 분신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죠.
<바람이 분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넷플릭스 추천)
<바람이 분다>는 결코 가볍거나 유쾌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어른들을 위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입니다. 지독한 가난, 대지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리고 꿈의 변질이라는 거대한 '바람' 속에서도 주인공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첫 은퇴를 앞두고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을 겁니다. 우리의 삶에 어떤 시련의 바람이 불어오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만 한다고. 지금 삶의 무게에 지쳐있다면, 넷플릭스에서 <바람이 분다>를 다시 한번 감상하며 조용한 위로와 살아갈 힘을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바람이 분다 | 넷플릭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꿈인 청년 지로. 하지만 1930년대 일본은 전쟁을 준비하고 지로에게는 전투기 개발 임무가 떨어진다. 파멸의 길로 들어선 일본과 함께 순수했던 청년의 꿈도 망가
www.netflix.com
'영화 리뷰 > 애니메이션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퇴마록 영화 후기: 줄거리, 퇴마록2, OTT 정보 (0) | 2025.09.15 |
---|---|
영화 <플로우> 리뷰: 결말 두가지 해석 (0) | 2025.09.11 |
'코마다 위스키 패밀리' 속 현실, 일본에 위스키 증류소가 많은 진짜 이유 (0) | 2025.08.30 |
'슈퍼배드 4' OTT 어디? | 슈퍼배드 & 미니언즈 시리즈 정주행 OTT 총정리 (0) | 2025.08.29 |
북극백화점의 안내원 - 멸종 동물의 지브리 감성 애니메이션 (0) | 2025.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