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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슬픔의 삼각형 리뷰 결말해석 | 열린 결말의 의미와 감상 포인트

by 무비콜렉터 2025.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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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 완벽 리뷰. 열린 결말 해석부터 파리소리, 인덴볼켄, 수류탄의 숨겨진 의미까지. 1부~3부 줄거리 분석과 계급 전복 블랙코미디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 가장 궁금했던 열린 결말, 그 진짜 의미는?

무인도에서 캡틴이 되어 권력을 잡은 애비게일의 자신만만한 모습

많은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열린 결말입니다. 과연 애비게일은 야야를 돌로 내리쳤을까요? 아니면 야야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로운 계급 사회로 돌아갔을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비게일은 야야 뒤에서 돌을 들고 서 있습니다. 야야는 리조트 엘리베이터를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하지만 애비게일에게는 현재의 권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야야의 뒤에서 몰래 돌을 들고 천천히 다가갑니다.

 

그런 애비게일에게 야야는 제안합니다. "여기서 나가면 당신을 내 밑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 그리고 영화는 에비게일이 야야를 돌로 내리쳤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끝나버립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 사회에는 슬픔의 삼각형이 반복될 것임을 보여주는 결말로 보입니다. 애비게일이 무인도에서 새로운 권력을 잡은 것처럼, 리조트를 발견하고 난 뒤에는 야야가 또 다른 삼각형의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정말 마지막 장면에서 칼이 뛰어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칼의 질주는 야야를 구하기 위해서 일까요? 해석은 관객 각자의 몫이지만 저는 칼이 돌아오지 않는 야야를 구하기 위해 뛰어갔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도 애비게일은 야야의 제안을 거절하고 무인도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돌을 그대로 내리쳤을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 1부~3부 줄거리와 주요 장면 분석

1부: 칼과 야야 - 젠더 역할의 부조리

외모 지상주의를 보여주는 모델 오디션의 한 장면

1부는 모델계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을 소개하며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보여줍니다. 남성 모델 칼은 오디션에서 '슬픔의 삼각형' 때문에 보톡스를 맞으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는 외모 지상주의를 풍자하기 위한 장면 같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칼과 야야가 레스토랑에서 계산서를 두고 벌이는 실랑이입니다. 경제력에서 앞선 야야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칼 사이의 긴장감은 현대 사회 젠더 관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데이트 비용을 두고 싸우는 야야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싸우는 칼의 화가 난 모습

데이트 비용에 대해 싸우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회는 계속 변화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성 역할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제적으로 더 잘 버는 사람은 여자이지만,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지불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 여자와 치열하게 싸웁니다.

 

1부에서는 결국 경제적으로 더 나은 야야가 칼의 위에 군림합니다. 또한 칼은 야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약자로 대변됩니다.

 

2부: 크루즈 - 자본주의의 침몰

크루즈에서 늙은 러시아 부호가 자신의 여자친구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

2부는 부자들의 호화 크루즈를 무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폭로합니다. 여기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직원들이 미끄럼틀을 타는 장면입니다.

 

미끄럼틀은 계급의 삼각형을 완벽하게 상징합니다. 최상층으로 올라가야만 미끄럼틀을 탈 수 있지만, 결국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야 하죠. 이는 일시적인 휴식조차 상층부의 허락 하에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폭풍우 속에서 러시아 부호와 이데올로기 논쟁을 펴는 선장

폭풍우 속에서 벌어진 선장과 러시아 부호의 이데올로기 논쟁도 인상적입니다.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선장과 자본주의의 수혜자인 부호가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배는 침몰하고 맙니다.

 

3부: 무인도 - 계급의 전복과 인간의 본성

크루즈 전복 후 무인도에 생존한 8명이 물과 과자를 먹는 모습

3부는 크루즈 전복 후 8명의 생존자들이 무인도에 표류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유람선의 청소부였던 애비게일이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됩니다.

 

애비게일만이 낚시를 할 수 있고 불을 피울 수 있어 식량을 공급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하위 계급이었던 청소부가 계급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선 순간, 모든 질서가 뒤바뀝니다.

 

특히 칼이 애비게일과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음식을 얻기 위해 연인 야야를 배신한 칼의 모습에서 인간의 생존 본능 앞에서 무너지는 도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감상 포인트 - 숨겨진 상징들의 의미

파리 소리의 상징성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파리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닙니다. 칼이 질투심을 느낄 때 파리가 한 마리에서 두 마리로 늘어나고, 직원에게 불만을 이야기하러 갈 때도 파리가 따라 들어갑니다.

 

파리는 부패와 타락의 상징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상류 사회의 내부가 실제로는 썩어있다는 메타포인 것이죠. 또한 위계질서에 대한 불만과 질투가 커질수록 파리도 늘어나는 세밀한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구토 장면의 상징성

잘 차려입은 러시아 부호의 아내가 배 위에서 구토하는 모습

2부에서 벌어지는 집단 구토 장면은 영화의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호화로운 만찬이 벌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시작된 승객들의 연쇄 구토는 단순히 뱃멀미를 넘어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토는 문명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인간의 원시적 모습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우아한 척해도,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생리적 반응 앞에서는 모든 계급이 무력해집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이 더러운 구토물을 토해내고 똥물을 뒤집어쓰며 계급의 허상이 무너지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수류탄의 아이러니

영화에서 어느 노부부가 하는 수류탄에 얽힌 이야기는 깊은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수류탄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물건"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수류탄이 유람선을 침몰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버립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장치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만든 무기가 결국 그 사회 자체를 파괴하는 도구가 되는 상황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자신이 만든 수류탄이 유람선으로 날아와 배를 침몰하게 만드는 장면은 결국 자본가 자신도 집어삼킨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 덴 볼켄(In den Wolken)'의 의미

"In den Wolken"을 반복해서 말하는 인물은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독일 귀부인입니다. 이 캐릭터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상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자신은 "In den Wolken"이라는 말만 할 수 있는 상태로 그려집니다.

 

"In den Wolken"은 독일어로 "구름 속에서"라는 뜻으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 즉 몽상가적 상태를 의미하는 독일 관용어구입니다.

 

감독은 이 독일 귀부인을 통해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독특한 스토리텔링 장치를 만들어냈습니다. 영화 전체를 통해 아무런 맥락 없이 "In den Wolken"만을 반복하는 이 캐릭터는, 부자들이 현실감각을 잃고 "구름 속에 살고 있다"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슬픔의 삼각형 - 사전적 의미와 영화적 의미

사전적으로 '슬픔의 삼각형'은 뷰티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미간을 찌푸릴 때 생기는 눈 사이 주름을 뜻합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때 생기는 주름으로, 현대 의학은 보톡스로 이를 지울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적 의미는 훨씬 깊고 복합적입니다. 저는 계급 피라미드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꼭짓점부터 하위계층으로 이어지는 삼각형을 의미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마치며 - 영원히 계속되는 슬픔의 삼각형

'슬픔의 삼각형'은 단순한 계급 전복 코미디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계급의 삼각형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무인도에서 애비게일이 권력을 쥐었을 때, 우리는 잠시 계급이 뒤바뀐 것에 통쾌함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순간이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삼각형의 시작이었습니다. 애비게일 역시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하고, 야야는 다시 기존 질서로 돌아가려 합니다.

먹지 않는 파스타를 들고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는 야야와 그녀를 찍어주는 칼

슬픔의 삼각형은 계속됩니다. 모델계에서도, 호화 유람선에서도, 무인도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일상에서도 이 삼각형은 존재합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족 안에서도 누군가는 위에, 누군가는 아래에 서 있습니다.

 

계급의 삼각형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 존재를 인정하든 부정하든, 그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DNA처럼 깊숙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삼각형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입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나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나요?

 

'슬픔의 삼각형'의 진짜 의미는 이 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절망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에 있습니다.

 

삼각형은 계속되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애비게일처럼 권력에 취할 것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것인지 말입니다.


🎭 '슬픔의 삼각형' 시청 가능한 OTT 플랫폼

현재(2025.8. 기준) 슬픔의 삼각형은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U+모바일 tv에서 모두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OTT 정보는 언제나 변경될 수 있으니 항상 최신의 다시 보기 정보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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